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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현대 철학의 주요한 논쟁구도는 무엇일까. 서동욱은 ‘차이’와 ‘부정성’의 개념 중 어느 것이 더 근원적인가 하는 물음에서 그 답을 찾고 있다. 서동욱, 「부정성을 너머 차이로: 하이데거와 들뢰즈의 경우」(『철학과 현상학 연구』,  34, 2007)는 ‘차이’와 ‘부정성’이라는 두 개념이 맥락과 상관없이 착종되어 사용되거나, 심한 경우 “같은 것”이라고 여겨지는 실정에 대해 비판하며 무엇보다 두 개념간의 우위성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본 논문의 중심 주제는 다음과 같다.

“어떻게 차이가 부정성을 파생적인 차원으로 밀어 떨어뜨림으로써 근본성을 획득하는가?”

이를 위해 본 논문은 “의식적으로 부정성에 대한 차이의 우위성을 주요하게 제시”하는 두 이론, 즉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1927),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1968)을 중심적으로 분석하면서, 이를 통해 ‘차이’와 ‘부정성’을 구분할 뿐만 아니라, ‘부정성’에 앞서는 ‘차이’의 근원성을 살피고 있다.

하이데거의 부정성 비판과
차이의 근본성
마르틴 하이데거
마르틴 하이데거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물음의 핵심은 ‘부정성’이 아닌, “가장 긍정적인 것”으로서의 ‘존재의 고유한 가능성’ 즉, 현존재의 ‘실존’ 의미를 밝히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유는 헤겔 철학의 부정성을 비판하는 대목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데, 구체적으로 하이데거는 헤겔이 말하는 정신의 본질이 “부정의 부정의 결과물”이라고 보았다. 헤겔이 주장하는 ‘정신’의 목표, 즉 ‘고유한 자기 개념’에 도달하는 일은 먼저 ‘나’를 ‘나’와 맞세우는 과정, 다시 말해 ‘나’에 대립되는 ‘나’를 설정하는 작업을 전제하며 이러한 ‘나’와 ‘나’ 사이의 부정(대립)을 부정하여(극복하여) 모든 종류의 대립된 ‘나’를 다시 ‘나’에게 귀속시키는 과정을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바로 이 지점, 다시 말해 헤겔의 ‘자기의식’을 위한 ‘부정성’이 근본적이지 않음을 비판하였으며, ‘부정의 부정’이 아닌 ‘근원적 시간성’에 근거해 자아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했다.

존재가 현존재로 하여금……실존하는 자로서의 자기 자신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존재와 시간』, 167쪽)

하이데거에 따르면 현존재의 존재함의 방식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그 ‘존재’에 근거해서만 일어난다는 점에서 ‘근원적 시간성’에 놓여있으며, 이에 따라 각각의 현존재가 ‘존재’와 관계하는 방식, 즉 ‘실존’만이 존재의 본질로 자리 잡는 것이다. 이렇듯 하이데거가 데카르트의 Cogito에서 논의 되지 않았던 [나는 존재한다]의 존재성의 자리를 현존재의 ‘실존’의 문제와 연결시킬 때, ‘부정성’이 아닌 ‘차이’의 문제가 존재론적 물음의 근원에 놓이게 된다. 여기서 ‘차이’는 존재와 존재자 사이의 구별, 즉 ‘존재론적 차이’이다. 이렇듯 하이데거는 ‘존재론적 차이’를 존재의 ‘존재함’을 규명하기 위한 근본 테제로 삼으며, 이로 인해 ‘부정성’은 부차적이고 파생적인 개념으로 밀려나게 된다.

들뢰즈의 부정성 비판과
차이의 근본성
질 들뢰즈
질 들뢰즈

하이데거와 마찬가지로 들뢰즈 역시 ‘차이’를 ‘부정성’에 앞서는 것으로 보는데, 들뢰즈의 ‘부정성’에 대한 ‘차이’의 우위성에 대한 확신은, 스피노자의 이론과 맥락을 같이한다.

“본성은 제한을 요구하며, 따라서 제한된 대로 말고 다르게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그것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한 사물의 본성은, 그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 한, 아무 것도 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스피노자, 『소론』, 1부 2장 5의 주)

들뢰즈 욕망이론의 핵심 개념인 ‘기관 없는 신체’와 ‘욕망하는 기계들’은 스피노자의 ‘실체’와 ‘속성’에 각각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여기서 ‘실체’를 구성하는 ‘속성’ 즉, ‘욕망하는 기계들’은 “무제한적이고 비결정적”인 ‘긍정성’ 속에서만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을 ‘부정’하는 형태로는 신체를 구성하는 ‘속성들’을 본질적으로 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들뢰즈 이론에서 ‘존재’는 “무제한적인 본성”을 긍정하는 ‘차이’를 통해 규명된다.

속성들이 자신의 종 안에서 무제한적이고 비결정적으로 있다는 것이 지니는 함의는 무엇인가? 바로 ‘구별’되는 속성들 사이에는, 그것들에게 정체성을 부여해 주는 부정이라는 ‘매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부정 없는 비존재”만이 있다는 것이다.(154쪽)

위에서 살펴보았듯 현대철학의 두 흐름, 그 중에서도 하이데거와 들뢰즈는 ‘존재’에 대하여 ‘부정성’이 아닌 ‘차이’의 논리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그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들뢰즈는 하이데거가 보여준 ‘존재론적 차이’의 한계점을 뛰어넘고 싶어 했다. 그의 저서 『차이와 반복』 서두에서 확인할 수 있듯, 들뢰즈는 하이데거가 ‘존재자’를 규명하는 문제에 있어서 ‘표상(동일성)’의 문제에 어떤 식으로든 얽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들뢰즈는 ‘존재’ 자체 뿐 아니라 ‘존재자’ 역시 철저한 ‘차이’원리 속에서 논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를 고려한다면 하이데거와 들뢰즈 이론에서의 ‘차이’의 접점은, ‘존재자’가 아닌 오로지 ‘존재’를 사유하는 지점에서만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들뢰즈의 ‘차이’가 “일의적 존재를 표현하는 다수의 힘들 사이의 차이”인 것에 반해, 하이데거에게서는 존재와 존재자를 구분 짓기 위한 개념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그렇다. 그러나 필자는 두 이론가의 ‘차이’개념이 결국에는 조우할 수밖에 없는 지점을 강조하며, ‘부정성’을 뛰어넘는 존재론적 ‘근원성’으로서의 ‘차이’를 주장하기 위한 작업을 매듭 짓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서두에서 잠깐 언급되었던 레비나스의 철학, 즉 ‘초월’과 ‘무한’으로서의 타자와 동일자의 ‘분리’를 상기함과 더불어 하이데거와 들뢰즈 이론에서 ‘차이’의 의미를 재고(再考)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이런 것이리라. 두 철학에서 이러한 차이의 모습은 서로 완전히 구분되는 것일까? 서로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들뢰즈에서 ‘존재자’는, 차이에 기반하는, 힘의 ‘강도’의 산물이고, 힘은 ‘존재’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차이는 존재로부터 존재자가 ‘구분되어 출현하게끔’ 해주는 차이 아닌가? 그런 뜻에서 이 차이는 ‘존재와 존재자 사이의 차이’라 일컬을 수 있으리라.(158쪽)

*함께 읽으면 좋을 논문

「M. 하이데거의 관점에서 본 현존재의 실존과 초월」
조형국, 2012, 『현대유럽철학연구』, 28, 239-261.

「들뢰즈의 ‘차이의 존재론’ 과 ‘시간의 종합’ 이론을 통한 그 입증」
조현수, 2013, 『철학』, 115, 67-110.

이단비 리뷰어  ddanddanbi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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