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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전남대 철학과 원승룡 교수의 「코기토 혹은 코기토주의: 메를로-퐁티의 데까르뜨 비판에 의거해서」는 관념론적 코기토주의가 ‘지각’과 ‘지각의 관념’을 혼동한다고 지적한다. 논문에 따르면, 데카르트는 보편적 인식을 찾고자 하는 열망으로 인해 우리의 경험이 지닌 자연스러운 ‘애매성’을 이론이 제시하는 창백한 ‘명증성’으로 환원시켜버린다. 이러한 사유의 구도는 우리 자신이 대상과 언제나 이미 관계 맺고 있다는 점을 망각하도록 만든다. 매 순간마다 생생하게 주어지는 ‘대상’에 대한 지각은 믿을 수 없는 허구로서 치부되는 반면, 영원한 보편타당성 속에서 이론적으로 추상화된 ‘대상의 본질’에 대한 관념은 명증성을 지닌 진리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코기토’란 결국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세계와 거리를 두고서 동떨어져 있는 독립적 주체로서 이해될 뿐이다.

지각인가,
지각의 관념인가?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과정에서 ‘지각’과 ‘지각의 관념’사이의 차이를 무시해버리고 만다. 그는 우리가 외부 세계에 대한 ‘지각’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지각의 관념’을 가질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가령, 내가 지금 난로의 ‘따뜻함’을 지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언제든지 잘못된 것으로서 드러날 수 있다. 나는 난로의 따뜻함을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난로의 따뜻함에 대해 꿈을 꾸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지금 난로의 ‘따뜻함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결코 잘못된 것으로서 부정될 수 없다. 난로의 따뜻함에 대한 꿈조차도 결국 하나의 관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에게 명증성 속에서 주어지는 현상은 ‘지각’이 아니라 ‘지각의 관념’이다. ‘지각’은 ‘지각의 관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논문은 데카르트가 잘못된 전제에 근거하여 자신의 입장을 성립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관념론적 코기토주의는 참된 인식이 결코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미리부터 규정해버릴 뿐이다. 지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으로 주어진다는 단 하나의 사실로 인해 부정적으로 평가받는다. 지각 속에서 드러나는 우리 경험의 다양성은 마치 오류가능성인 것처럼 비하되고 만다. 그러나 지각을 단순한 관념에 불과다고 여기는 태도는 지각 너머에 변하지 않는 실재를 허구적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의심스럽다. 우리는 이러한 실재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가지고 있지 않다. 심지어 지각이 때로 잘못을 범하기도 한다고 증명하는 것조차 ‘또 다른 지각’이지, ‘지각 너머의 실재’가 아니다.

감각-지각은 때로는 착각을 범하기도 하며, 그 모호함으로 인해 감각이 일어나는 상황이 현실인지 꿈인지를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감각의 실재성, 세계의 실재성이 증명된다는 것을 데카르트는 간과한다. 착각임을 증명하는 것은 바로 (다른) 감각이요, 꿈의 감각임을 증명하는 것도 현실적인 감각이다. 현실적, 실재적 감각은 그 자체가 최후의 존재 인식의 기준이요, 다른 어떤 여타의 증명도 요구할 필요가 없다. (140쪽)
애매성인가,
명증성인가?

데카르트는 관념의 명증성을 진리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는 우리가 가진 관념이 대상의 본질에 정확히 부합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상’에 대한 지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점에서 의심스러운 반면, ‘대상의 본질’에 대한 관념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믿을 수 있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 실재를 개념으로 정확히 파악하여 반성적 사고를 통해 투명하게 그려낼 때에야 비로소 참된 인식을 성취한다는 것이다. 가령, ‘사랑’에 대한 인식은 ‘사랑의 본질’에 도달함으로써 획득된다.

즉 올바른 개념으로 보이는 틀, 범주 속에 포섭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갑이 당시 을을 아무리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참된 사랑의 개념’ 속에 있지 않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149쪽)

논문은 데카르트가 의심스럽게 여기는 지각의 애매성이야 말로 중요한 인식론적 의의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지각을 통해 드러나는 세계는 애매성 속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 대상은 매 순간마다 새롭게 지각됨으로써 어떠한 고정된 이론에도 가두어지지 않은 채 우리에게 자신을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각의 운동은 결코 멈추지 않고서 언제나 대상을 향해 열려 있다. 가령, ‘사랑’에 대한 지각은 결코 투명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사랑’은 규정될 수 없는 다양한 면모로 드러난다. ‘사랑의 본질’을 개념적으로 완벽하게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하고 만다. 우리는 단지 매 순간마다 ‘사랑’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사랑을 인식할 뿐이다. 물론,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사랑’은 정의할 수 없는 불분명한 것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직접적 참여 속에서 지각된 이러한 ‘사랑’이야 말로 사랑에 대한 생생한 경험이다. 우리는 ‘사랑의 본질’을 파악하지 않고서도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이다.

체험은 자신이 ‘참여한’ 체험이기 때문에 명증적인 것이지 참/거짓의 판별적 인식체험으로서 명증적인 것은 아니다. 실재와 직접 대면하는 일차적인 지각체험은 대상에 대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것이 확실히 무엇인지 모르는 채 세계와 만난다. 꿈꾸는 자가 꿈의 의미를 모르듯, 범죄자가 범죄를 알지 못하듯, 상황 속에 있는 자(참여하는 자)는 언제나 애매한 닫힌 세계 속에 있다. ‘사랑을 체험하는 사랑하는 자에게 사랑은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 (149쪽)
실존하는 주체인가,
생각하는 주체인가?

데카르트는 ‘코기토’를 세계와 동떨어져 존재하는 주체로서 묘사한다. ‘코기토’는 대상의 본질에 대한 관념을 명증성 속에서 인식할 수 있는 특권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세계는 마치 허공에서 조망되는 것처럼 단일한 시선으로 포착된다. “사고하는 내가 절대적이고 그에 의해 사고되는 관념들이 조금의 불투명한 구석도 없이 투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들은 어떤 다른 해석에 의해서도 도전받지 않는 절대성을 갖는다. 이렇게 해서 사실적 코기토는 코기토주의로 확대 재생산된다.”(150쪽) 이러한 주체는 그 어떠한 타자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고립적이다. 타자에 의해 다른 시각으로 세계가 해석될 수 있을 경우 ‘코기토’가 지닌 절대적 명증성이 훼손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 외에 다른 주체가 관점을 가지는 순간에 나의 생각과 관점은 상대화되어 버리고, 나는 나의 생각의 명증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다시 다른 주체와 타협하여야 한다. 이것은 주체의 절대성에 대한 심각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나의 인식들의 명증성은 오직 내가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내가 외부 세계에 놓았던 것들 이외에는 밖에서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다면, 나는 외부가 없는 닫혀진 내가 될 것이다. 나는 유일하면서도 보편적이다.(151쪽)

논문은 데카르트의 ‘절대적 코기토’에 반대하여 ‘암묵적 코기토’를 제시한다. 이때 코기토는 ‘생각하는 주체’가 아니라 ‘실존하는 주체’로서 묘사된다. 우리는 세계를 전체적으로 파악함으로써 단일한 해석의 틀 속에 가둘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지 않다. 주체는 단지 매 순간마다 지각을 통해 대상을 늘 새롭게 경험할 뿐이다. 대상에 대한 인식은 결코 완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언제나 애매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애매성에도 불구하고 세계 속에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우리의 인식은 그 자체만으로 참되다. 진정한 코기토는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대상을 지각하며 늘 세계를 다시금 해석해나가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 세계의 근거도 확실히 모른 채(세계를 설명하지 못한 채) 세계와의 만남을 체험한다. 그것은 사랑이란 말을 모른 채, 사랑의 의미를 규정하지 않은 채 사랑을 체험하는 일과 같다. 그러나 그것은 의식의 최초의, 근원적인 형태이면서 덜 개화된, 야만적인 주체가 아니라 유일하게 실존하는 주체일 것이다. (157쪽)

*함께 읽으면 좋을 논문

「데카르트 이후 탈(脫)코기토의 주체성과 소통 중심의 주체윤리」
윤대선, 2014, 『철학논총』, 75, 163-188.

윤유석 리뷰어  tnals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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