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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 지난 3월 10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안이 인용되었다. 어떤 논자는 이번 사건을 두고 한국 민주주의가 크게 진전했다고 평가하는 반면, 어떤 논자는 여전히 이것이 대의 민주주의 체제의 한계를 드러내는 사건이라고 논평한다. 탄핵안이 인용된 이후 부쩍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라는 용어를 자주 보게 되는 것 같은 것은 나의 착각일까. 그 말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너무나 진부한 반복이라고 생각한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 우리는 정녕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걸까.

사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지적은 오래 전부터 지적돼 온 문제다. 누구나 익히 알고 있고 또 익숙한 문제틀이다. 대표성의 왜곡, 민의의 반영이 어려운 구조, 즉각적이고 상시적인 소환과 심판의 부재로 인한 정치엘리트의 권위주의화 등등, 우리는 수많은 비판들을 접해온 바 있다. 시민정치, 혹은 직접 민주주의, 가깝게는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듯 국민소환, 국민발안 제도 등이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정당이 강해야 바람직한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은 보다 일반적인 것 같다.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직접 참여에 의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대의 민주주의다. 많은 정치체제 중에서 대의제 민주주의가 살아남은 이유는 그것이 비록 문제를 안고 있을지라도 다른 체제보다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애덤 쉐보르스키가 지적한 바 있듯이, 민주주의는 “서로 죽이지 않도록 하는” 체제다. 여태껏 역사 속에서 정치 권력의 변동은 피와 혁명을 불러왔지만 민주주의만큼은 복수의 정당들 사이에서 선거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평화적으로, 그리고 정기적으로 정권이 바뀐다. 그리고 바뀐 정권은, 선거에 의해 합법성을 부여받는다. 정통성이 무너지면 정변을 불러오기 십상이었던 군주제나 일부 특수한 귀족들만이 정치권력을 향유할 수 있었던 귀족정, 혹은 단 한 개의 정당만이 정권을 독점하고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렀던 일당 체제보다 민주주의가 우월할 수 있는 이유다.

윤종빈 명지대 교수의 「정당정치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소고」(『미래정치연구』, 6(1), 2016)는 이러한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와 정당정치에 대한 견해를 담은 논문이다. 논자 역시 정당정치의 활성화를 중요한 과제로 지적한다. 미래에도 민주주의가 살아남는다면, 그것은 정당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남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정당 때문이다. 정당은 민주주의의 요체라는 단순한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의민주주의와 정당

민주주의는 정당 간의 민주주의다. 달리 말해, 정당이 강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이할 수 밖에 없다. 다른 체제보다 민주주의가 우월할 수 있는 이유는, 민주주의야말로 ‘야당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정치체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월한 체제가 어디서부터 위기를 맞이한 걸까.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는 곧 정당의 위기다. 정당의 위기는 첫째, 정치적 대표성의 약화, 둘째, 참여의 위기, 셋째, 의회의 약화다. 이 문제의 원인은 다시 몇 가지로 축약 가능하다. 첫째, 정치사회와 시민사회 사이의 유리, 둘째, 시민사회의 공적 기구에 대한 불신, 셋째, 그로 인한 포괄적인 정치적 무관심의 증가, 넷째, 정치 환경의 변화가 그것이다.

윤성이 교수는 2009년 논문에서 소셜네트워크의 급속한 발전이 불러온 변화에 대해 언급한다. 즉,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폭넓고 쉬운 정치참여의 길을 열었고 유권자들은 계속 정치인과 소통하려 하지만 기존의 ‘공급자 중심’의 소통 방식은 변화된 정치환경에서 대표성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달리 말해, 이제는 수요자 중심의 소통방식으로 재편되어야 한다고 윤성이 교수는 지적한다. 요컨대, 이제는 의제설정의 주도권이 대표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로 연결된 다수의 개인들에게 있다.(윤성이, 민희 2009, 166)

정치환경의 변화 뿐만 아니라 정당-유권자 간의 동원 연계가 미흡하다는 것 역시 정당정치의 위기를 초래한 중요한 원인이다. 정당은 기본적으로 집단을 동원함으로써 지지를 확보하고 선거에 승리하기 위한 집단이다. 이 때 동원의 주요 타겟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다. 한국 정당 정치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지역주의는, 비록 그것이 다소 제한된 범위 안에서 벌어졌을지라도, 지역을 기반으로 한 집단적 동원의 성격을 지녔다. 그러나 갈수록 지역주의가 약화되고 있는 지금, 지역주의를 대체할만한 새로운 갈등구조는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강원택(2009) 교수에 따르면 “지역주의의 퇴조로 정당과 유권자 간의 구조적 연계가 약해졌”고, 이념 균열 역시 이를 대체할만큼 충분한 파급효과를 가지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의 모색?

정당 정치의 위기는 의회 정치의 위기를 촉발하고, 곧 이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로 연결된다. 정당과 유권자 사이의 약화된 연계는 곧 대표성의 위기를 낳는다. 정치환경은 과학기술의 빠른 발전과 보급으로 인해, 그리고 사람들의 변화된 가치관으로 인해 급격하게 변동하고 있지만 이것을 수용할만한 대안적 정치과정 모델은 여전히 답보상태이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대안을 창출할 수 있는가? 수많은 민주주의 모델들이 있지만, 현재로서 대의제 민주주의를 완전히 대체할만한 새로운 민주주의 시스템은 요원해보인다. 다만 우리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가진 한계가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그것을 보완할만한 모델을 제시할 수는 있다.

윤종빈 교수는 논문에서 여러 민주주의 모델 사이의 논쟁을 소개하지만 여기서는 대표적으로 한가지만 소개하도록 하겠다.

민주주의 모델에 관해 프랭크 핸드릭스(Frank Hendriks)는 의사결정의 구조 및 주체라는 두 가지 틀을 활용하여 네 개의 민주주의 모델을 고안했는데, (1) 대의민주주의 (2) 협의민주주의 (3) 유권자 민주주의 (4) 참여민주주의가 그것이다. 핸드릭스에 따르면, 대의제 민주주의는 의사결정이 명확하고 선거의 효과적인 활용을 통해 책임성과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과도하게 경직된 결정 시스템과 승자에 의한 권력 집중, 소수와 패자에 대한 관용의 부족 등을 약점으로 가진 체제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소통과정이 필요한데, 핸드릭스는 그 대안적 보완모델로서 참여민주주의 모델을 제시한다. 참여민주주의는 단순히 개인 선호를 합산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의 선택이 아니라 통합과 의견 교환, 그리고 참여의 질 향상을 통한 끊임없는 소통을 중요시한다.(Hendriks, 2010. 108)

반면 뮤츠(Muts)는 이러한 참여민주주의와 숙의의 형태가 필연적으로 갈등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타인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이고 이성적으로 토론하려는 숙의의 능력을 갖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정치참여는 오히려 정반대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숙의의 능력을 갖춘 집단은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반면, 그렇지 못한 집단에서 정치참여에의 강도가 더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Muts, 2006).

이 외에도 논문에서 윤종빈 교수는 다양한 민주주의 모델들 사이의 논쟁을 소개한다. 가장 주목해볼 점은, 이러한 민주주의 모델들 사이의 논쟁이 새로운 모델을 창출해내거나 고안하는 작업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정치 체제가 가진 취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모델을 연구한다는 점이겠다.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는 기본적으로 대표성의 위기다. 대표성이 무너진다면 대의민주주의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

 

결국, 다시 정당

대표성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는 다시 정당으로 돌아와야 한다. 정당이 쇠퇴하면 대의민주주의는 쇠퇴하는가? 나는 그렇다고 본다. 정당은 선거에서의 승리를 추구함으로써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집단이고, 그를 위해 유권자들과 직접적으로 연계를 맺으며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를 대표한다. 이러한 정당이 쇠퇴한다는 것은 결국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인 대표성이 쇠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달튼(Dalton)과 그의 동료들은 정당의 쇠퇴가 민주주의의 쇠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들에 따르면 정당의 쇠퇴는 단지 대중정당의 쇠퇴일 뿐 정당은 제 기능을 유지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지속된다. 요컨대, 정당은 상황에 따라 잘 적응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오늘날 정치환경이 변화하게 된 주요 변수는 정보통신기술의 급격한 발달이다. 스마트폰, 노트북, 그리고 가볍고 쉬운 인터넷에의 접근은 시민들을 상호연결시켜주고 나아가 정치에의 접근 장벽을 대폭 낮춰주었다. 달리 말해, 시민들의 참여가 증대되고 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개방됨으로써 기존의 정치 구조로는 이러한 변화의 양상을 수용하기 어렵다.

정당의 쇠퇴가 곧 민주주의의 쇠퇴인가 라는 지점은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다. 나는 정당이란 단지 정부를 창출하는 집단일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 집단적 열정을 동원하는 조직이라고 본다. 갈등을 조직한다는 것은 개인단위로 흩어진 사람들에게 개별적으로 접촉하는 일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집단적 갈등에의 참여하고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의 문제다. 샤츠슈나이더가 지적한대로, 민주주의는 갈등의 제도화를 위한 체제이며 갈등의 제도화는 정당을 통해 이뤄진다. 요컨대, 시민과 정당이 제대로 연계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쇠락하게 된다.

대표성의 위기는 곧 정당의 위기이자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직관적으로 드러내주는 징후다. 지난 월가 시위는 시민의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정치권에 대한 반발로 인해 촉발됐다고 논자는 지적한다. 정당이 다수의 흩어진 개인들을 집단으로써 동원하고 조직해내지 못한다면, 그 사회의 이익은 단지 개별 시민의 이익으로 환원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갈등의 수는 겉잡을 수 없이 많아질 것이다. 정당이 하는 역할 중 중요한 기능 하나는, 사회에 산재한 갈등의 수를 줄여준다는 것이다.

논자는 한국의 정당 역시 정치적 대표기능을 복원해 정당민주주의를 되살리고, 대의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그를 위해 소통방식의 변화, 참여의 보완, 공적 영역의 신뢰회복, 정당조직의 체계적이고 미시적인 디자인 연구 등을 핵심 과제로 지목한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들어온 말이고, 그 대안 역시 너무나 익숙하게 들어왔다. 윤종빈 교수의 논문은 분명 한국사회에서 정당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목요연하게 분석하고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난 이것이 진부한 반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꼭 가야만 할 길이라고 여긴다. 진부하지만,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는 없는 길. 다만 나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우리는 정녕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나”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한국 정당민주주의의 제도적 특징과 개혁 과제: 독일, 영국, 스웨덴과 비교적 관점에서」
장선화, 2015, 『평화연구』, 23(1), 2015.

「‘11월 시민혁명’ ‘광장’과 대의제를 생각한다」
손호철, 2017, 『마르크스주의 연구』, 14(1), 2017.

최태준 리뷰어  xowns518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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