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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국민의 대다수가 민주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공화국이라는 정치체제가 구축되어 있는 현재의 한국(Republic of Korea)에서, 왕이 홀로 권력의 정점에 서는 조선의 정치체제와 정치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단순하고 쉬운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정작 조선시대 정치에 대해 말해보려고 하면 여기저기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처럼 평가를 주저하게 되는 것은 500여 년 가까이 지속된 조선의 정치를 단 몇 마디로 정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조선에는 원죄原罪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원죄는 바로 망국亡國이라는 것, 그것도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망해버린 나라라는 것이다. 20세기 초반 이 원죄는 조선의 정치체제나 정치 양상 등에 대한 역사적 상상력을 제한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어렵게 했다. 조선이 망한 뒤 조선의 정치는 조선이 식민지가 된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었다. 조선의 지배층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당파를 나누어 서로 싸우기만 했고 결국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부정적인 평가를 일제강점기 일본의 연구자들도 공유하고 있었다. 일본 연구자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당파성黨派性’이라는 개념을 통해 소모적인 분열만을 거듭하는 조선의 정치가 조선 민족의 고유한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 식민지 지배의 명분을 위해 여러 망국에서 나타났던 일반적인 현상들을 추려내어 조선의 특수성으로 설명해버린 것이다.

해방된 뒤 일제강점기 일본 연구자들의 주장은 전면적으로 다시 검토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가 내세운 조선의 ‘정체성停滯性’ ‘타율성他律性’ 등에 대한 비판이 곧바로 시작된 것과 달리 ‘당파성’에 대한 비판은 얼마간 유보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당시 남한과 북한의 연구자들도 원죄 때문에 여전히 조선의 정치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만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파성’에 대한 비판은 6·25전쟁 뒤 남한과 북한이 각각 ‘근대화’를 이룩하기 위해 국가 전체를 총동원하고 그 결과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나타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었다. 북한에서는 조선의 정치에 대한 시각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남한에서는 ‘근대화’ 과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조선의 정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등장했다. 이것은 조선의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부분에서도 현재 한국 ‘근대성’의 맹아萌芽를 발견하려는 시도였다. 그리고 이른바 일제강점기의 ‘식민사학’을 극복하는 시도이기도 했다. 결국 그 동안 여러 연구들의 축적으로 조선의 정치를 대표하는 개념은, ‘당파성’에서 ‘붕당정치朋黨政治’ ‘공론정치公論政治’ 등으로 대체되었다. 예전에는 조선의 ‘당쟁黨爭’을 부정적인 정치 현상으로만 단순하게 파악했다면, 지금은 당쟁을 현대의 정당정치에 빗대어 보다 복잡하게 이해하려고 한다.

이번에 다룰 송웅섭의 「조선 초기 ‘공론’의 개념에 대한 검토」(『한국학연구』, 39, 2015)는 공론정치라는 개념으로 조선의 정치사를 서술해나가는 연구 중 하나이다. 이 연구는 그러한 정치사 서술의 바탕이 되는 공론과 공론정치의 개념을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조선 정치사 연구의 방향과 진행 상황을 확인해볼 수 있는 연구이다.

론정치公論政治의 내용

공론정치는 공론이 핵심이 되는 정치이다. 공론은 모든 사람이 옳다고 여기는 정당한 의론, 공명정대한 의견이나 입장, 그리고 그 같은 평가 등의 맥락으로 통용되고 있다(357쪽). 공론은 조선시대 사료에도 직접 등장하는 개념이지만, 당시 공公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함께 정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당시의 공론 개념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현재 조선의 공론에 관심이 있는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은 ‘근대적 공공성’ ‘공론장’ 등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공론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송웅섭의 연구는 공론 개념의 의미 그 자체에 바로 접근하기보다는, 공론 개념이 통용되고 있었던 조선 당시의 맥락과 공론으로서의 위상이 부여되는 방식을 확인함으로써 공론 개념을 검토하려고 한다.

조선에는 언론言論을 담당하는 관원, 대간臺諫이 있었다. 대간은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의 관원들을 함께 가리키는 용어로, 이들에게는 여러 업무가 있었지만 왕에게 직언直言하고 여론의 상황을 전달하는 업무가 핵심이었다. 물론 대간이 아닌 다른 관원들도 일시적으로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대간은 왕의 눈과 귀로 비유될 정도로 언론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왕은 인정仁政과 덕치德治가 바탕이 되는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위해서는 언론을 무시할 수 없다고 여겼고, 대간 역시 언론을 왕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자신들의 소명으로 여겼다.

대간이 여론을 모아 왕에게 전달하면서 자신들의 정리된 의견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한 것이 바로 공론이었다. 실제로 모든 관원들의 의견을 모으지 않았고 대간의 모든 의견이 공론으로 이해된 것은 아니었지만, 일반적으로 대간의 의견은 공론으로 이해되었다. 송웅섭은 당시 왕도정치와 같은 유교적 가치에 기초한 도덕적 정치문화가 통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대간의 의견이 대체로 공론으로 이해되었다고 보았다. 왕이 유교적 가치들을 정면으로 부정하지 않는 한 공론은 왕도 함부로 무시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송웅섭에 따르면, 공론을 중시하는 조선의 도덕적 정치문화는 태종대와 세조대를 지나 성종대에 정착했다. 조선 왕의 권력은 도덕적 권위와 공적 제도 테두리 안으로 정리되었고, 대간은 공론을 자신의 입장에서 전유하면서 왕, 재상 등과 함께 점차 주요 정치 주체로 성장해나갔다. 이러한 흐름이 16세기에 이르면 이른바 ‘사림(士林)’의 등장으로 이어졌다고 이해되면서, 공론과 공론정치는 조선시대 정치사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제시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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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근정전 앞 품계석
공론과 공론정치의 가능성

공론과 공론정치라는 개념은 ‘식민사학’에 대한 비판과 한국 ‘근대성’의 맹아 발견이라는, 해방 이후 한국사의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하다. 먼저 공론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조선 정치사에서는 당쟁이 기본적으로 유교적 가치체계, 도덕적 정치문화 등을 기초한 공론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론정치가 진행되는 양상에서 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유사한 형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론과 공론정치라는 개념을 통해 조선의 정치사가 이전보다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널리 활용되는 다른 유용한 학문 개념들과 마찬가지로 공론과 공론정치 역시 굉장히 모호한 개념이다. 공론이 중심이 되는 정치 형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되는가? 공론정치가 아닌 정치와는 어떻게 다른가? 공론정치는 단순히 독재와 대응되는 정치 형태인가? 왕조국가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등 지금의 연구 성과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질문들이 가능하다. 게다가 조선 정치사의 긍정적인 부분, 특히 도덕적인 우위나 정당성, 과학적 합리성 등을 발견하려는 시도가 ‘식민사학’의 주장을 완전히 대체하는 이론적 성취를 거두었는지는 의문이며, ‘근대성’ 자체에 대한 비판이 이미 수없이 진행된 상황에서, ‘근대적 공공성’에 비견되는 무엇을 찾으려는 시도의 효과도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공론公論에 대한 논의는
공론空論일까

해방 이후 조선의 정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었고, 거기에서 민주주의나 공화주의의 ‘기원’을 발견하고 싶은 바람도 이어졌다. 하지만 ‘당파성’을 의식한 채 진행되는 역사적 평가는 단순하게 선과 악을 나누는 것에 불과했다. 일제강점기 일본 연구자들의 문제는 500여 년 동안 지속된 조선의 정치사 전체를 선과 악으로 분명히 나누어 서술해버리려는 것이었다. 여기서 선은 일본 제국주의가 이해하는 ‘근대성’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공론이나 공론정치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을 활용해 조선 정치사를 서술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조선의 원죄로 가려진 조선 정치의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은 여전히 검토되지 못하고 있다. 조선시대 정치에서 전근대적인 어떤 것, 혹은 근대적인 어떤 것이 발견되기를 원하는 것은 오래된 바람일 뿐이다.

20세기 후반 거대서사가 중심이 되는 근대 역사학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뒤, 역사학의 역할은 인간의 역사가 단순하게 정리될 수 없고 매우 복잡한 양상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밝히는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공론과 공론정치라는 개념은 당대에도 사용된 개념이라는 점에서 연구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오히려 역사를 단순하게 이해하는 데 영향을 주고 있다. 현재로선 공론公論에 대한 논의는 공론空論에 가깝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조선 공론정치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제안」
김경래, 2012, 『사학연구』, 105, 107-147.

「18세기 ‘공론’ 정치 구조에 관한 시론」
이근호, 2014, 『조선시대사학보』, 71, 67-98.

이지훈 리뷰어  pen9uinis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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