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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finale지난 주 금요일 3월 10일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선고된 날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이루어지기까지는 기나긴 과정이었는데, 지난 3개월 동안의 헌법재판소의 심의도 있었고, 국회에서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하고자 하는 여야의 여러 움직임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2016년 10월 29일을 시작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일련의 대규모 집회이기도 했다. 김공회 연구자의 「“촛불정국”의 사회경제적 차원: 분석과 전망」(『마르크스주의 연구』, 14(1), 2017)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기까지 주요한 사회운동의 변수로 작용하였던 촛불시위와 그 정국의 사회경제적 차원을 분석한다. 특히 저자가 ‘촛불정국’이라고 불리는 것이 무엇을 이끌어왔고, 또 무엇을 반영하며, 앞으로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인지를 다룬다.

 

촛불정국의
경과

시작은 종합편성채널 TV조선의 보도였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청와대의 개입이 있었을 수 있다는 보도가 등장하였는데, 이 보도는 작년 7월이었다. 그러나 이 보도는 별다른 여파가 없이 잠잠했다. 이 문제는 조선일보 주필의 개입때문이라는 의혹이 등장했고, 한겨레가 이를 지적하였다. 이후 10월 24일 마찬가지로 종합편성채널인 JTBC가 이른바 ‘태블릿PC’를 입수·보도했고 촛불시위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들이 입수한 태블릿PC에는 최순실이 청와대 문건을 받아보며 국정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담겨 있었다. 이 보도를 시작으로 촛불시위는 시작되었고, 10월 29일 첫 주말집회였던 제1차 범국민행동에 3만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그리고 그 다음주말 집회에서는 100만명으로 늘었고, 제6차 범국민행동에서는 232만명이 광화문에 모였다. 한 장소에 모인 사람들의 숫자만 계산된 것이었다.

 

촛불정국의
사회경제적’ 배경

하지만 촛불집회의 폭발적인 팽창은 조금 의아한 구석이 있다. 왜냐하면 10월 중순까지도 ‘백남기 추모국면’은 사람들을 광장으로 불러모으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문제나 가계부채, 청년실업, 고 백남기 농민과 같은 농민문제 등도 큰 동력이 되지는 못했다. 기존의 여러 지적들에서 불평등 심화나 정경유착 등이 촛불정국을 이끌었다고 제기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200만 명이 넘는 군중을 한꺼번에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든 ‘원인’으로서 분석적으로 자리매김하지는 않는 것 같다. 흔히 진보진영은 이번 촛불정국의 배경으로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불평등, 재벌의 독점과 횡포, 비정규직 확산과 고용불안, 치솟는 가계부채, 주거불안정 등을 들고자 하며, 이번 촛불정국에서 터 져 나온 대중의 분노는 그간 누적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불만이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매주 열리는 토요집회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과 관련자들의 처벌 이외에 다른 사회경제적 이슈들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사회경제적 배경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사회경제적 원인의 역할을 미미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이 실제로 미미해서라기보다 사회경제이외의 배경이 너무도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 재생산의
위기

촛불시위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범국민적 분노에서 시작된 것이다. 때문에 여기에 1차적인 목적이 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촛불시위의 등장에는 사회경제적 배경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모순을 극복하는 것은 중요한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 문제는 그동안 자본과 국가권력, 언론에 의해서 효과적으로 통제되었으나, 촛불시위 이후의 이 통제는 느슨해질 수 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대중이 ‘자각’하면서, 나아가 이러한 조건 속에서 촛불정국의 장기화 자체가 모순들을 증폭시키면서, 그 모 순들의 존재가 일거에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저자는 그 모순을 ‘재생산의 위기’라고 표현한다. 이 재생산의 위기는 직접적으로는 ‘자본’ 재생산의 위기(=수익성의 위기)이지만, 노동력의 재생산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재생산까지 포괄하는 총체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1997년 이후 한국경제의 문제를 ‘불평등’이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이 불평등은 자산불평등과 소득불평등으로 다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후자는 특히 정규직-비정규직과 같은 고용형태의 차이에서 주로 기인하는 것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이러한 설명방식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존재하는 생산의 문제로 보기 보다는 생산의 결과물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의 문제에 주로 초점을 둔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과 달리, ‘재생산의 위기’라고 명명하는 것은 분배차원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불평등이라는 자본축적상의 위기가 표현되는 형태일 뿐임을 명확히 한다.

한편 저자에 따르면, 이번 촛불정국이 한국의 자본에 갖는 가장 중요한 의의는, 이를 통해 자본이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경제의 다른 두 주체인 노동과 국가에 떠넘기던 그간의 관행에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먼저 노동의 경우엔 그 재생산의 위기가 이미 표면화되었으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되고 대중의 분노에 의해 박근혜 대통령이 권좌에서 끌어내려질 상황에 처한 지금, 재벌들은 그 자신이 ‘공범’으로 몰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라 안팎에서 더 이상 국가 의 예전과 같은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정경유착’
문제제기를 넘어서

물론 현재의 국면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사회경제적 질서는 얼마간의 재편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과감한 복지공약과 경제민주화를 기치로 내걸었으나, 이를 실현시키지 못했고, 재생산의 위기는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정경유착의 고약한 말로를 보여주었는데,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정경유착이 문제로 떠오른 데는 크게 두 가지 맥락이 있다. 첫째로 과거 신군부와 같이 정당성이 부족한 정권이 공직사회와 재벌을 통제하려는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었고, 둘째로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한 구제금융 당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한다면, 정경유착에 대한 문제제기가 ‘공직사회 때리기’나 ‘더 완전한 자본주의 도입’으로 귀결되었던 것은 놀라운 것도 아니다.

때문에 저자에 따르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문제를 단순히 정경유착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으로 보는 것은 ‘그것이 가르키는 현상의 거대함을 적절히 환기할 수’ 없다. 요컨대 자본-임노동의 생산관계가 현대경제의 토대를 이룬다는 것, 그리고 자본축적이 체계 전체를 움직이는 핵심 동학이라는 것을 명확히 할 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문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 자영업의 붕괴와 가계부채 문제 등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들의 난맥을 풀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이러한 저자의 설명은 특히 정경유착으로 환원될 수 없는 현재의 사회경제적 성격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의 촛불정국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과 함께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원론적인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촛불정국이 갑작스레 등장한 까닭에 대한 기존의 설명들을 비판하고 있는 부분은 흥미로우나, 그 이상의 대안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데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한편, 여러가지 촛불정국 이후의 동향에 대한 예측은 저널리즘적인 정치비평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였다고 하겠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재생산의 위기와 재생산의 사회화 전략 모색」
강동진, 2015, 『진보평론』, 65, 86-116.

「재생산의 위기와 성장체제의 전환」
송명관, 2015, 『진보평론』, 65, 17-52.

박알림 리뷰어  allimp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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