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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많은 대중문화 분야가 그렇지만 세계 대중음악 역시 미국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가령 세계음악이라고 했을 때, 미국음악이 중앙에 있고 그것을 제외한 지역의 음악을 월드뮤직이라고 총칭할 만큼 전 세계인은 미국음악을 듣거나 그로부터 파생한 음악을 들으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미국음악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가? 바로 흑인음악이다. 리듬 앤 블루스나 힙합, 록 등 미국음악을 비롯한 전 세계 대중음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장르들은 흑인음악에서 파생되었다.

황영순 평택대학교 미국학과 교수는 미국 흑인음악의 역사적 배경과 발전 과정(『미국사연구』, 34, 2011)에서 전 세계를 휩쓴 우리가 알고 있는 20세기의 미국 대중음악이 18세기부터 20세기 말에 이르는 오랜 역사의 산물이며 미국 흑인음악이 바로 미국 대중음악사의 주류라는 점을 미국사를 기술하며 보이고 있다.

디아스포라와
흑인음악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음악이 사람의 생명이나 건강, 성격, 행복을 좌우할 만큼 신비한 힘과 마력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다. 그렇기에 그들의 음악은 주술적,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출생, 결혼, 사망 등 인생의 중요한 의례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였다. 이처럼 아프리카인들에게 음악은 ‘삶’이라는 부분과 가장 밀접하기 때문에 저자는 음악의 사회기능적인 측면이 그 어느 민족보다 크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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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말라위 북부 툼부카 사람들의 경우 음악 연주는 바로 의료행위이기도 하다. 특히 ‘북을 치는 행위’는 대부분의 아프리카의 치유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병의 원인은 신이나, 인간 또는 영혼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질병이 있는 사람 앞에서 춤을 추는 행위는 그 환자를 들여다보고 투시하는 것에 해당된다.” (118-119쪽) ©리뷰아카이브

저자에 따르면, 미국에서 흑인음악의 출발은 17세기 말 미국 남부 노예농장에서 흑인 노예들이 부른 노동요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동요는 생산성 향상을 도왔으므로 다른 음악과 달리 백인 주인들에 의해서 권장되기도 했다. 그러나 흑백간 음악교류는 노동요 발생 이후에도 폭넓지 못했는데 흑인 노예들이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기독교의 찬송가와 유럽 전통음악을 접하게 되자 드디어 아프로-아메리칸의 첫 열매로 볼 수 있는 흑인영가Negro Spiritual가 19세기 초에 자리잡게 된다. 흑인영가는 노예해방이 선포 된 지 얼마 안 되어 전 세계인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한편 미국에서는 17세기 말 흑백 간에 엄격한 구분이 생겨났고, 백인 주인에게 절대 권한을 허락하는 노예법이 식민지 의회에서 제정되기 시작해 18세기 초에 제도화되었다. 백인에게 흑인은 교화의 대상이자 지배와 착취의 대상이었는데, 흑인노예들은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긴 항해 동안 학대당하고, 신세계에 도착하면 백인 지주들에게 경매로 팔려가 새 거주지로 옮겨졌다. 미국 남부지역에 정착한 흑인 노예들은 그들의 삶과도 마찬가지인 음악과 종교의례를 철저하게 금지 당했으며, 미국의 흑인음악은 시작부터 인종차별주의적 함의를 갖고 출발했다.

흑인영가에는 고통 받음과 저항과 예속으로부터의 탈출의 갈망이 깊이 스며 들어있었으며 그 본질에는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아프리카 음악의 원형이 담겨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러한 흑인음악의 특이한 본질을 백인들이 상업화에 이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대중 연예 쇼인 ‘민스트럴 쇼’에 흑인음악이 등장하면서 1840년대와 50년대 미국 전역에서 흑인음악이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그리고 쇼를 위해 작곡된 밴죠 음악의 활기찬 리듬은 이후 미국 대중음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흑인음악의 변천과
그 위상

미국 흑인들에 의해 처음 연주되기 시작한 랙타임Ragtime은 19세기 말엽 흑인 악단의 쇼에서 생겨났는데, 이 유행은 세기의 전환점부터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또한 블루스Blues는 미국 남부의 노동가 또는 흑인영가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20세기 초 30년 동안 크게 유행했는데, 원래 독창곡 형식이었으나 후에 재즈밴드의 표현 요소로 받아들여져 절망감, 고뇌, 실연과 같은 인간적 슬픔을 주로 노래했다.

그러던 중 1920년대에 이르러 흑인들의 삶은 크게 바뀌게 된다. 미국의 산업이 제조업으로 바뀌면서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고, 흑인 중 약 20퍼센트가 도시빈민으로 유입되어 대거 북부 도시로 올라가게 된다. 이에 따라 흑인들의 삶은 복합적이고 다원적인 삶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농장 별로 서로 멀리 떨어져 지내던 삶에서 매일 얼굴을 마주보는 삶으로, 또 자유의 제약에서 일정 정도 벗어난 노동자로 살게 된 것이다. 이 시기 도시에서 블루스는 빠른 리듬이 더해져 밝고 빠른 음악으로 변했다. 이것이 리듬 앤 블루스Rhythm & Blues다.

1950년대 들어 블루스, 컨트리, 재즈, 가스펠 음악의 혼합체가 전자 기타로 연주되며 흑인 특유의 흔드는 템포로 변했는데, 이것이 로큰롤Rock’n roll이 되었다.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가 초기에 무대에 섰을 때 백인 관객들은 “아니 저 친구는 백인인데 왜 노래는 검둥이처럼 부르지?”하며 의아해 했다고 한다. 이처럼 팝 음악의 모든 재료는 흑인들이 만들어냈지만 그 재료로 유명해진 사람들은 백인 아티스트와 음반업자들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백인음악가들이 흑인 음악으로부터 큰 이득을 취했음에도 그 상업화의 손길이 흑인 음악의 전성기를 만들었기에 그들이 기여한 공을 간과할 수만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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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적이고 대담하고 환상적인 미국음악이 자랑하는 두 가지 유산인 재즈와 블루스는 흑인음악에서 시작되었고 이러한 연유로 흑인음악이 바로 미국의 대중음악이라고 부를 만 하게 된 것이다.” (131쪽)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는 루이 암스트롱. ©리뷰아카이브

1977년 뉴욕 브롱스 남부와 할렘에서 흘러나온 길거리 음악이 이후 40년 이상 지속되며 수백 억 달러의 세계적인 산업을 일으키면서 신세대 창조적 표현의 특징이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힙합Hip-hop이다. 모든 것을 삼킬 것 같은 열정과 흑인들의 일상을 담아내는 가사, 그리고 강한 악센트의 리듬을 만드는 비트박스가 떠오르며 힙합의 예술성과 상업성에서의 혁명이 조성되고 랩은 미 대륙을 종횡무진 누비게 된다.

힙합은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변두리 젊은 흑인들이 독자적 길을 찾아나서는 데에서 비롯되었지만 갱스터랩을 출현시킨 문화적 압박감과 규제는 흑인 정신과 활동의 가파른 상승 또한 부추겼다. 결과적으로 힙합은 시청각 매체에서의 차별을 없애는 한편, 래퍼는 할리우드에서 높은 지위를 누리게 되었고 실질적으로 1990년대 흑인사업체의 약 45퍼센트의 성장을 이끄는 등 흑인의 경제적인 자립을 유도했다. 저자는 흑인 젊은 층에 대한 외면과 배척이 오히려 자족과 자긍심을 갖는 흑인세대를 키워냈으며, 그것이 바로 역사상 그 어떤 문화적 운동도 이루지 못했던 미국 흑인들이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발전과 진보를 이룩하게 한 힙합의 힘이라고 본다.

흑인음악은 아프리칸 아메리칸 오디세이에 다름 아닌, 자유와 평등의 길고도 험한 여정을 따라 바다를 건너, 세대를 넘어, 세기를 지나 그들의 유산을 꿋꿋이 보존하면서 지속적으로 흑인과 비흑인 문화를 연결하고 대륙 간의 결합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의 지위가 피부색깔이나 혈통이 아니라 재능과 능력으로 결정되는 평등사회 속에서 흑인도 즐거운 인생 sweet life을 살 수 있는 아메리카를 만든 것이다. (137쪽)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음악은 당대의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등과 함께 연구를 해야만 그 정체성과 현재 흐름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저자는 미국사를 연구하는 학자답게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노예시절 이전부터 구전되어온 고향의 음악전통을 어떻게 새로운 땅에 이식하고 발전시켜왔는지 면밀히 기술한다. 논문을 통해 흑인음악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장르화되고, 세계 대중음악을 장악할 수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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