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4_762_1155

logofinale서민은 유독 정치인들에게 많이 호명된다. 서민 뒤에 함께 자주 붙는 단어는 ‘살림’. 많은 정치인이 ‘서민 살림’을 걱정하지만 정작 서민의 실체는 모호하기만 하고, 서민을 두고 경쟁적으로 정책을 내놓는데 비해 살림은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 ‘서민’이란 명확하지 않은 개념임에도 최근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대 다수인 75.4%가 스스로를 서민층에 귀속시켰다. 정치인들이 습관적으로 서민을 찾는 이유를 아마 이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75.4%는 모두 서민일까? 대체 서민은 누구인가?

장세훈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의 「서민의 사회학적 발견: 중산층을 통해 본 서민의 사회계층적 위상」(『경제와사회』, 109, 2016)에서는 서민의 사회계층적 위상이 현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변모해 왔는가를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는 한편, 보유 자원, 계층의식 및 행위양식을 중심으로 이들의 계층적 속성을 파악한다.

‘서민’의 위상은
어떻게 변화해왔나?
서민의 사회계층적 위상이 현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변모해 왔는가를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는 한편, 보유 자원, 계층의식 및 행위양식을 중심으로 이들의 계층적 속성을 파악한다.
‘서민’은 이미 춘추전국시대 이전에도 있었던 용어인 만큼 역사가 깊다. 당시 경제, 정치, 사회문화적 역량을 갖춰 성姓을 지닌 사람들을 백성百姓으로 칭하면서, 이들과 달리 성이 없는 일반인, 또는 피지배계급을 가리키는 용어로 서민이 등장했다. 이러한 의미는 지금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아 사전적으로도 “아무 벼슬이나 신분적 특권을 갖지 못한 일반 사람, 또는 경제적으로 중류 이하의 넉넉하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규정되고 있다. 이 같은 서민 인식은 한국사회에서 1960년대까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식민 지배와 분단, 전쟁까지 겪으며 중간층이 형성되지 못해 국민 대다수가 ‘보편적 빈곤’의 시대를 겪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민은 중산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개념이었으며, 흔히 부유층, 엘리트층을 제외한 대다수 사람들을 가리키는 보편적 통칭으로 여겨졌다.

그러던 중 196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에 힘입어 중산층 개념이 확산됨에 따라 서민 이미지는 크게 변모했다. 서민은 여전히 특권과는 거리가 멀고 경제적으로 핍박 받았지만 계층 상승의 실마리를 잡을 가능성이 주어졌다. 이에 따라 ‘뒤쳐지고 정체된’ 서민의 이미지는 고도성장에 힘입어 기회의 땅인 도시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선 존재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뀌었다. 또한 중산층이 중간 정도의 소득 수준과 문화생활을 누리는 비교적 안정적인 중간소득 계층을 지칭하게 되면서, 서민은 빈곤층과 중산층 사이에서 중산층을 지향하며 계층 상승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사회 집단이라는 인식이 싹트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상호 중첩된 서민/중산층 개념 사이를 더 벌려놓은 것은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따른 자가소유의 확산이었다. 고도성장은 도시 인구 폭증으로 이어졌고, 도시 주민의 주거 불안을 증폭시켰다. 특히 성장의 결실 중 일부가 지가 폭등의 형태로 부동산 부문으로 전이되면서, 주택 자산의 보유는 단순한 주거 불안의 해소를 넘어 자산증식을 통해 계층 상승을 가능하게 하는 기회로 여겨졌다. 그 결과, 내 집 장만 여부는 서민과 중산층을 가르는 계층 분할의 척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여기까지도 서민과 중산층이 별개의 사회계층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중산층과 서민 사이를 결정적으로 갈라놓은 계기는 IMF 경제위기였다. IMF위기 직후 한국 경제는 고도성장 국면에 재진입하지 못하고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따라서 과거와 같은 대규모의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안정적인 자산 보유에 더해 일자리의 안정성이 중산층과 서민을 구획하는 또 하나의 잣대로 작동하게 되었다. 이제 중산층은 모든 측면에서 안정적인 지위를 확보한 ‘중상층’으로 여겨지게 됐으며, 탈중산층들이 서민으로 호명되기 시작했다. 과거의 서민이 ‘희망의 서민’이었다면, 현 단계의 서민은 중산층 진입 기회를 봉쇄당한 ‘절망의 서민’으로 변모하며, 독자적인 계층집단을 형성해가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정말 서민층이 중산층과 구별되고 있는지 좀 더 면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서민,
중산층과 어떻게 다른가?

저자는 서민층의 위상과 속성을 자세하게 살피기 위해 중산층과의 비교를 시도한다. 비교 방식으로는 서울·경기, 부산·경남 도시 지역 주민 25명을 대상으로 2014년 1~3월 동안 심층면접을 시도해서 이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사회의식 및 생활양식 등을 파악했다.

면접대상자들은 각자가 인식하는 귀속계층과 무관하게 서민이 전문대학 졸업이나 고졸의 학력에 20~30평 규모의 전세 주택에 거주하며, 월 평균 소득은 300만 원 이내로, 자영업 서비스직이 주축이고 일부 하위 전문직, 일반 사무직이 포함된다고 보고 있다. 반면 중산층의 특성은 대졸 이상의 학력에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30~50평 규모의 자가소유 주택에 거주하며, 월 평균 소득은 500만 원 안팎이고, 의사, 약사, 교수 등의 전문직이나 중간 관리직, 또는 중소기업 경영 등에 종사한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면접자들이 보유한 실제 자원 현황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직업적 특성에 비추어볼 때, 중산층은 신·구 중간계급의 상층에, 그리고 서민은 이들 계급의 하층 및 노동자계급과 겹쳐졌다. 자산 보유 측면에서 중산층이 부모의 상속·증여 형태로 물려받은 주택 및 금융자산을 시초축적의 기반으로 삼아 자가소유 및 자산증식을 꾀하는 반면, 서민들은 시초축적을 이룰만한 자산을 물려받지 못한 채 자신의 힘만으로 주거를 마련해야 했다.

서민을 중산층의 내부분화 과정에서 나타난 주변적 중산층이나 서민적 중산층으로 보기에는 중산층과 서민 간의 계층적 거리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고 본다
사회적 자본에서 중산층은 자신의 일자리나 연고집단을 넘어서는 폭넓은 사회적 관계망을 구축하는 반면, 서민들은 “먹고살기 빠듯한”일상생활에 얽매여, 친인척 관계나 업무상의 연락 등과 같은 최소한의 인간관계 범주를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로 본인을 서민으로 인식하는 참여자는 “가족이 해체된 느낌인 빈민에 비추어 가족 부양과 따뜻한 가족애가 유지되는 모습”이 서민이라고 보면서, 가족 관계를 자신들의 사회적 자본의 근간으로 삼고 있었다.

문화적 자본의 보유에서 중산층은 부부 모두 대졸 이상의 학력에, 가구주는 박사, 사법시험 합격 등의 고급 자격을 소지하거나 대기업·외국계기업의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고급 문화·예술의 향유를 통해 교양을 쌓으며 서민과의 ‘구별 짓기’에 나섰다. 그에 반해 서민의 가구주는 고졸자가 다수이고, 일자리에서 나름의 기술을 발휘하면서도 자격증이나 공인된 역량을 구비한 경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또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어 여가 활동도 동네 산책이나 등산, 가벼운 술자리 등을 즐기는 데 그치고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일상 문화나 여가 활동으로는 서민을 하나로 묶어줄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고 본다. 따라서 서민층 내부에서 이들의 권익을 집단적으로 표출하거나 조직해낼 구심점을 만들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논문에서는 위와 같은 서민층의 속성 외에도 중산층과 구별되는 특징들을 더 많이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특징들을 살펴본 결과, 서민을 중산층의 내부분화 과정에서 나타난 주변적 중산층이나 서민적 중산층으로 보기에는 중산층과 서민 간의 계층적 거리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중산층의 분해가 진행 중에 있다고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논문을 통해 어렴풋한 ‘서민’ 개념을 좀 더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 또한 서민의 역사적 위상 변화의 맥락 안에서 현재 더 이상 계층 이동이 힘들어진 현실과 한국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저자가 말했듯 서민은 계급·계층의 틀로는 계층적 존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계급·계층과 전혀 무관한 사회집단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기에 새로운 접근이 요구되는 개념이 바로 서민일 것이다. 심층면접에 의한 이러한 연구가 실증적 연구로 이어져 변화된 사회실상을 반영하고 또 사회 불평등 해소의 발판이 되길 바란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군집분석(Clustering analysis)을 이용한 사회계층별 여가인식과 행태의 차이」
김은희, 2012, 『한국사회학회 사회학대회 논문집』, 887-904.

「서민의 정의에 대한 탐색적 고찰」
송유진, 2015,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15(11), 104-114.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porter, R

깊.게 판 진짜 지.식 @깊지라고 불러주세요.

RRESEARCH, REPORT, LIBRARY의 R입니다.

1 thought on “누가 ‘서민’인가?”

  1. 서민과 중산층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대한민국의 양극화 심화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마름모꼴 사회가 경제적으로 이상적인 사회구조인데 점점 20대 80 사회로 가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